제목 : 나를 상하게 하는 일은 그만하기로 했다.
작가 : 전지영
출판 : 허밍버드(2019.07.25)
아는 형님에 박진영 편에서 어떻게 건강이나 동안을 유지하는지 물어보았더니 사람들이 어떤 걸 먹어야 하냐라고 물어보는데 나쁜 음식을 먹지 않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머리를 한대 얻은 맞은 기분이었다.
각종 건강보조식품들을 먹어봤자 몸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폭식, 음주, 야근, 각종 관계와의 스트레스에 '힘들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이전에 술 먹어도 담날 바로 풀렸는데..' 등을 입에 달고 살면서 내 몸을 위한 노력 따윈 하지 않았다.
살을 빼야겠다는 다짐은 십 년 넘게 하고 있지만 매년 찌기만 하고 있고, 2년 전에는 허리가 아파서 휴가를 쓰고 한방병원을 다닌 이후로, 허리 통증은 지병이 되었다. 허리가 아파서 좌식으로 앉는 것은 잘 못하고 있고, 오른쪽 팔과 양쪽 팔목 인대가 아프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해 노력한 게 없다. 바빠서 못했다기보다는 귀찮고 하기 싫어서 피했다. 그러다 올해는 정말 몸이라는 생각으로 요가를 등록하여 두 달 정도 다녔는데 코로나 사태로 2주째 요가를 못 하고 있는 상태다.
2주 동안 집에 있으면 책을 엄청 많이 읽을지 알았지만 웬걸 그냥 퍼져버렸다. 이젠 TV 채널을 돌려도 봤던 것만 나온다. 전자도서관 생각이 나서 이 책을 빌리게 되었다. 옛날 사람이라 종이책 아니면 눈에 안 들어오는 편인데 글을 읽자마자 한 번에 다 읽어버렸다. 공감 가는 부분이 많고 쉽게 읽혀서 가볍게 읽기에 좋았다.
이 책은 몸도 마음도 엉망이 된 저자가 인생의 방향을 생각하기 이전에 몸부터 바로 세워야겠다는 생각에 요가를 시작하고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여 시골 바다 마을에서 요가를 가리키면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 몸을 더 아끼고, 단련해야겠다는 생각이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결심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상하지 않는 일이 어디 있냐는, 모두 하기 싫어도 억지로 참고 일하는 거라는, 당신이라고 특별하지 않다는 타인의 말에는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상하는 일이야말로 정상이 아니고 인생에서 하기 싫어도 억지로 참고해야 하는 일은 나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내가 아플 때 누구도 대신 아파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몸을 혹사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회복하고 단련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늘리지 않으면 우리의 몸은 해마다 나빠지는 일 밖에 남지 않는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하는 일을 찾고 싶다.'라든지 '나도 주위에 괜찮은 스승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인생에 정답을 알려 주는 스승 같은 것은 없다'라고 말하고, 찾아야 할 진정한 나 자신이란 존재하지 않고, 나 자신을 만드는 것은 타고난 형질이나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비록 타고난 형질이 아니더라도 내가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나의 형질이 되는 것이므로 그저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과정이 나 자신이라고 한다. 과거의 나를 부정하며 후회하고, 이건 재능이 없어서라고 포기하는 것것보다는 나만의 속도로 지루하고 평범한 것들을 내 안의 강인함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내가 되는 길이구나 싶었다.
요가를 시작한 지 2달밖에 되지 않았고, 요가의 동작들을 제대로 따라 하지도 못한다. 그냥 내 몸이 너무 틀어졌고, 굳어 있구나를 깨달았고, 요가를 하는 것이 정말 심심하지만 하고 나면 내 몸을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좋아서 다음 달 요가를 또 등록해 놓은 상태였는데, 저자의 요가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들을 읽고 있으니 요가 책을 좀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번에 저자가 책에서 말한 [요가 디피카]라는 요가 입문서를 읽어 봐야겠다.
요가의 어원은 '결합하다'라는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 유즈에서 유래했다. 유즈는 '마구를 채우다', '멍에를 씌워 붙들어 매다'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요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몸과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왜 자유가 아닌 구속이 요가의 어원이 되었을까?
...
자유는 무한하다는 의미도 아니고 내 멋대로 한다고 얻을 수 있는 가치도 아니다. 그러한 상태는 오히려 끊임없는 결핍에 시달리게 만든다.
요가에서 우리는 각자 목적에 의해 달리는 마차에 비유된다. 이성이라는 마부가 감각 기관에 해당하는 말의 고삐를 쥐고 육체의 마차를 끌고 간다. 마차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이들의 주인, 바로 진정한 내면의 자아다. 올바른 삶이란 이성으로 감각을 제어하면서 자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성의 힘이 약해지면 말들은 제멋대로 행동한다. 분노, 슬픔, 기쁨, 행복, 즐거움, 상실, 두려움의 말들을 제어할 수 없다면 육체의 마차는 목적지를 잊어버리고 폭주하거나 멈춰 버린다.
매 순간 내가 원하는 것은 자유가 아닌 감각기관이 쫓는 자극적이고 순간적인 행복감에 불과하다. 요가는 유즈라는 어원 그대로 미친 원숭이처럼 날뛰는 마음에 마구를 채우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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