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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 들뢰즈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by 즐거운샐리 2019. 6. 20.

저자 : 박영욱

감영사

 

데리다, 들뢰즈, 기타리, 라캉, 데카르트, 칸트, 후설, 하이데거...

책을 읽다 보면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딱히 그들의 대표적인 이론이 무엇인지 알 길도 없었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철학이라면 말장난 같아 싫어했었는데

초보자들에게 너무나 유용한 책입니다.

지식인 마을 시리즈네요..

다른 책들도 쭈욱 읽어봐야겠습니다.

 

보통 인상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마네의 올랭피아나 풀밭 위의 점심식사 이야기를 합니다.

아카데미아에 반대하여 어쩌고저쩌고...

아카데미의 그림이란 백과사전에 나오는 사과의 개념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을 말합니다.

밤에 보든 낮에 보든 사과의 개념은 항상 동일하죠

개념적으로 언제나  동일한 모습

그러나 배고플 때의 사과와 배부를 때 보는 사과는 다릅니다.

개념적으로 그린 그림은 사과 자체의 고유한 차이를 드러낼 수 없지만

인상주의 화가는 처음으로 이 개념으로부터 벗어나 그림에 차이를 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차이에 대해서 자크 데리다는 '차연'이라고

들뢰즈는 '차이 자체'라는 용어를 써서 설명합니다.

 

칸트는 인간이 이 세상에 대한 지식을 형성하는 데는 단지 사고 능력뿐 아니라

감성 능력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요..

개념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식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원의 개념 정의하면 한 점에서 동일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입니다.

한 번도 원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원의 정의만 듣고 원을 그릴 수 있을까요?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이미지를 도식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감성적인 도식은 우리 삶에서 개념보다 훨씬 더 친밀하고 근본적인 것이라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칸트가 중요하게 생각한 감성적 도식의 능력이 대중문화에 의해 획일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왜곡되고 조작되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장르영화는 곧 상업영화라고 하였는데요,

서부영화가 반복하고 있는 획일화된 이야기 구조에 빠져들어 이미 그것에 길들여진 것, 대중에게 새로운 창조 능력과 비판정신은 더 이상 기대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들뢰즈는 영화가 인간의 눈이 아닌 카메라라는 기계의 눈에 담긴 지각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표상과 관습, 진부한 도식에 의해 지배된 우리의 사고에 새로운 충격을 던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표상이란 세계를 분류할 때 쓰는 머릿속의 기준을 말하는데

외국인이 문어와 낙지의 맛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에게 낙지와 문어를 구별할 수 있는 표상 체계가 없기 때문에

문어나 낙지나 octopus일 뿐입니다.

표상에 빠지게 될 때 현실의 풍부함과 다양성이 사라지고

제각기 다른 고유한 특이성 혹은 차이들이 소멸됩니다.

 

데리다와 들뢰즈는 이러한 표상주의적 태도를 공격하였습니다.

 

자크 데리다 (1930~2004)  - 차연

차이란 공간으로 완전히 결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을 통해 변화하는 진행의 과정입니다.

말년에 모네가 그린 수련 시리즈를 예로 들어,

그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꽃의 질감을 담고 있지도 못하며,

오전의 강렬한 햇빛에 반사된 색감을 전달하지도 못합니다.

모네의 연꽃은 연꽃의 흔적만을 드러낼 뿐 공간적으로 차별화된 기호를 드러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데리다의 기호는 고정된 기호가 아닌 자신의 흔적만을 담고 있을 뿐이며

이러한 흔적은 시시각각 차이를 통해 다양하게 드러 낼뿐입니다.

데리다의 기호는 차이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흔적을 드러내면서도 자신을 지연하고 유보하는 차연의 표현입니다.

 

질 들뢰즈(1925 ~ 1995) -  차이 자체

진부함에 대한 거부

카뮈의 소설 이방인

뫼르소는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러 법정에 서게 됩니다.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사실이 법정에서 뫼르소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그는 개념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당하는데요,

일상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개념 없는 인간들이지만

오히려 개념이야말로 생사람을 잡는 것이 아닐까요?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의 대화를 봅시다.

어린 왕자 : 이리 와서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쓸쓸해

여우 :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았으니까

어린 왕자 : 길들인다는 게 뭐지

여우 :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쉽게 잊힌 것인데,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어린 왕자 : 관계를 맺는다고?

여우 : 물론이지.

넌 내게는 아직 몇 천몇 만 명의 다른 애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아이일 뿐이야.

그래서 내가 네가 필요 없어.

또 너도 내가 필요하지 않고.

너에겐 내가 다른 몇천 몇만 마리의 여우와 똑같은 여우 한 마리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할 거야.

넌 내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될 거고.

나도 너에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될 거야...

 

여기에서 길들여진다는 것

'차이 자체'를 발견하는 것

그 차이는 결코 개념으로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국내도서
저자 : 박영욱
출판 : 김영사 200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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