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책 읽어 주는 남자
저자 : 베른하르트 슐링크
이레
2004.11.30
영화는 보지 못했는데 호기심에 대충 한번 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한 번에 주욱 읽어버렸습니다.
한나 슈미츠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끝까지 작가가 한나역으로 케이트 윈슬렛을 추천했다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이 영화로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지금이라도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과 무거운 마음이 다시 생기기 싫다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정말 대단합니다.
1부는 무척 에로틱 합니다. 글을 읽는데 영상물로 접하는 것보다 더 에로틱하게 다가옵니다.
특히 스타킹 올리는 부분의 묘사가 정말 좋았습니다.
열다섯 살 미하엘과 서른여섯살 한나의 사랑
어린 소년의 미숙함, 달뜬 열정
중년 여인의 고단함, 원숙함
책을 읽어주기, 샤워, 사랑, 함께 누워있기
그들만의 사랑의 의식이 왠지 그녀의 고단한 삶에는 위안을
소년에게는 생동감을 줍니다.
이러다 치정극이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와는 달리 갑자기 그녀는 그를 떠납니다.
그리고 2부
소년은 대학생이 되어 나치전범 재판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합니다.
이 재판은 수감자들을 수송하는 도중 수감자들을 교회에 가뒀는데 폭격으로 불이나고, 문을 열어주지 않아 1200명의 수감자들이 2명만 남고 다 죽게 되는 사고의 책임을 묻는 재판입니다.
그때 감시원으로 일한 사람이 한나입니다.
한나는 자기가 문맹이라는 것을 알리면 감형이 될 수 있음에도 다른 사람의 죄를 뒤집어쓰면서까지 문맹의 비밀을 밝히지 않고 무기징역형을 받습니다.
주인공의 마음의 갈등들..
독인 전후 세대의 갈등..
이런것들이 복잡하게 다가옵니다.
철학자인 주인공 아버지가 말합니다.
'추악한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몰랐던 시절에 느꼈던 아름다움도 모두 사라져야만 하는가'
아무리 먹고 살기 위해 직업이 필요했고,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포로수용소의 감시원 역을 자청했다고 해도, 그 결과 수많은 포로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나치 전범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이라면 그 사람은 결과에 따라 악한이 되고, 처벌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생각도 나고, '7년의 밤'에서 수문을 연 최현수 생각도 납니다.)
그렇지만 미하엘은 그녀를 사랑했었습니다. 그녀를 전범으로 미워하지도 못하고, 사랑했던 마음을 지키지도 못합니다.
그의 증언으로 그녀를 도와줄수도 있었지만 그녀가 바라는 것이 아닐 거라 단정 짓고 미하엘은 숨어버립니다. 솔직히 주인공이 약간 못나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3편
미하엘은 결혼을 하고 딸이 다섯 살에 이혼을 합니다.
그리고 한나가 수감된 지 8년만에 감옥에 있는 그녀에게 책을 읽어서 테이프를 보냅니다.
그녀를 사랑하지도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죄책감 때문인지 사랑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와의 적당한 거리가 좋았던 걸까요?
첫사랑 그녀의 이미지를 잃지 않고 자신의 과거에서 헤엄치는 즐거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부터 한나는 글을 배워 간단한 편지를 미하엘에게 보내지만 미하엘은 답장을 보내지 않습니다.
한나가 수감된 지 18년이 되어 풀려난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혼란스러워합니다.
석방 1주일 전 처음 면회를 갑니다.
한나는 석방되는 날 새벽에 목을 매어 죽습니다.
일생동안 모은 돈을 불타는 교회에서 살아남은 딸에게 주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그녀는 미하엘의 어정쩡한 감정을 눈치챘을까요?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존심을 지킨 그녀가 멋있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현명한듯한 그녀는 그녀가 생각하는 그녀의 치부인 문맹을 숨기기 위해 도망치다 보니 감시자가 되고 또다시 문맹을 숨기려다 죄를 다 뒤집어쓰게 되고...
운명이란 게 정해져 있어서 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는 것인지..
선택의 연속 속에 잘못된 선택의 결과가 너무나 큰 것인지...
한나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현재와 과거의 갈등, 세대와 세대의 갈등, 역사를 먼저 경험한 이들과 나중에 경험한 이들의 갈등과 이해, 소통과 화해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책입니다.
그냥 그런 것들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계속 나의 과거와 현재 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포장되고 해석되고 변명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왜일까? 왜 예전엔 아름답던 것이 나중에 돌이켜보면, 단지 그것이 추한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느닷없이 깨지고 마는 것일까? 상대방이 그동안 내내 애인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왜 행복한 결혼 생활의 추억은 망가지고 마는 것일까? 그런 상황 속에서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동안은 행복했는데! 마지막이 고통스러우면 때로는 행복에 대한 기억도 오래가지 못한다. 행복이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 때에만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통을 잉태한 것들은 반드시 고통스럽게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의식적인 고통이든, 무의식적인 고통이든 간에? 그러면 무엇이 의식적인 고통이고 무엇이 무의식적인 고통인가?"
"한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나의 고통이 어느 면에서는 나의 세대의 운명이고 독일의 운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 운명에서 더욱 빠져나오기 힘들고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 슬쩍 넘어가기도 힘든 것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위안이 될 수 있는가"
"우리의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둔 것이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나는 이 사실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그것이 정말로 참기 어렵다고 느낀다.
어쩌면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비록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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